열쇠 없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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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공식 사과문을 냈다.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 임시주택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른바 '버스 하우스'—이 사흘간 뭇매를 맞은 뒤였다. "주거 문제의 엄중함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고백. 청년 주거비 부담을 단기적으로라도 덜어보자는 고민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다고 해명했으나, 이미 인터넷에는 한남더힐과 반포래미안을 배경으로 한 조롱 밈이 넘쳐흘렀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조차 "닥치고 사과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폐버스가 정책 아이디어로 나올 수 있는 머릿속에서, 청년은 '언젠가 해결될 문제'이지 '지금 당장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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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서울 강서구 마곡17단지에서는 다른 비극이 조용히 진행 중이었다. 토지임대부 분양, 이른바 '반값 아파트'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사다리를 놓겠다며 공급한 단지다. 이달 말 입주를 앞두고 당첨자 70여 명이 계약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잔금 대출이 막혔다.
사전청약 당첨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비율 80%를 적용했으나, 본청약 당첨자에게는 60%로 제한됐다. 같은 단지, 같은 평형, 심지어 같은 층 옆집인데 대출 한도가 억 단위로 갈렸다. 당국은 "대출액을 사전에 안내했다"고 답했으나, 목돈 마련에 한계가 있는 청년에게 차액을 어디서 마련하라는 것인지 묻는 물음에는 끝내 답이 없었다. 계약금과 청약통장을 함께 날린 이들 앞에서, '반값 아파트'라는 명칭이 더없이 허망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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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만들어놓고 잠가버리는 정책. 공급과 금융이 따로 논다. 정부는 청년 우선공급을 외치며 토지임대부 주택을 지었고,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명분으로 빗장을 걸었다. 두 정책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 공급 없이 주거 안정은 공염불이요, 총량 관리 없이 가계 부채는 폭탄이 된다. 그러나 두 정책이 한 사람의 삶 위에서 충돌할 때, 청년은 문 앞에서 되돌아가야 한다. 열쇠를 나눠주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라 벽이다.
지방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중은행이 집단대출을 제한하면서 수도권을 넘어 지방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까지 은행을 전전한다는 소식이 잇따른다.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 완화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미 계약을 포기한 이들에게 뒤늦은 '검토'가 무슨 위안이 되랴. 정책의 시간과 삶의 시간은 다르다. 입주일은 유예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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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차갑다. 판잣집, 비닐하우스, 여관 객실처럼 정상적 주택으로 보기 어려운 곳에 사는 가구가 전국에서 55만에 육박하며, 10년 새 35%가 늘었다. 서울이 17개 시도 중 증가율 1위다. 냉방도 단열도 부실한 곳에서 폭염을 버티는 이들이 수도권에 절반 이상 몰려 있다. '버스 하우스'가 비난받은 것은 그것이 풍자가 아니라 현실에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 터이다. 농담이 현실을 추월할 때, 사회는 경고등을 켜야 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빈민가 주택 문제를 다룬 왕립조사위원회 보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집을 지을 수 있는 자본과, 집에 살 수 있는 임금 사이에 다리가 없다." 150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청년 주거 정책은 그 다리를 놓겠다고 선언하면서 정작 건너편에는 울타리를 쳤다. 공급과 금융, 주택 정책과 대출 정책이 서로 다른 관청에서 서로 다른 시계를 보며 돌아가는 탓이다. 국토교통부가 입주 일정을 짜는 동안 금융위원회는 총량 한도를 죄고, 그 사이에서 청년은 양쪽 모두에게 '사전 안내했다'는 답변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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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추가 공급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 한다.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에 한국주택금융공사 보증을 붙여 숨통을 틔우는 방안이 검토된다는 말도 들린다. 취지야 이해하나, 이미 질식한 이들 앞에서 산소호흡기를 '검토'한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정책 당국자들은 알까. 공급과 금융 사이에 난 틈을 메우지 않는 한, 새 주택이 아무리 늘어도 그것은 청년에게 손 닿지 않는 진열장 속 상품에 머무른다.
"우리가 집이 없지, 자존심이 없나요." 버스 하우스 논란에 한 청년이 남긴 말이다. 집이 없어서가 아니라, 집이 있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분노한다. 문을 열어놓고 열쇠를 감추는 정책 앞에서, 청년의 자존심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