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에서 텍사스까지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을 때 한국은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빌려 원전을 짓는 신생 산업국이었다. 그로부터 오십 년이 지난 2026년, 한국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해 미국 땅에 원전을 세우게 됐다. 역수출(逆輸出)이라 불러도 될 법한 반전이다.
지난 1일 한미 양국은 전략적 투자 MOU의 후속 조치로 세 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프로젝트 스타'—텍사스 엔시날 지역에 총 사업비 223억 달러, 6,472MW 용량의 가스복합화력 발전소를 짓는다. '프로젝트 파워'—미국 내 대형원전 8기(APR1400 2기, AP1000 6기) 건설에 최대 1,200억 달러를 투입한다. 거기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검토까지. 규모만 훑어도 숨이 가빠지는 숫자들이다.
텍사스 발전소는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구조다. 미국 1위 발전운영사 넥스트라 에너지, 글로벌 부동산개발 업체 릴레이티드 컴퍼니, 텍사스주 5위 가스 공급업체 루이스 에너지 그룹이 파트너로 나선다. 2029년 1단계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2032년 전체 가동이 목표다. 인공지능 시대가 전력을 먹어치우는 속도에 한미가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인데, 설계·시공·운영 전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원전 프레임워크는 더 흥미롭다. 한국형 노형인 APR1400은 양국 기업 간 타협협정 때문에 미국 진출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주정부·의회·업계를 다각도로 접촉해 마침내 진입장벽을 허물었다고 밝혔다. APR1400 2기가 '원전 종주국' 미국에 첫 발을 디디면, 제3국 시장에서 한국 노형의 신뢰도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다. 웨스팅하우스 노형인 AP1000 6기 건설에도 한국 시공사와 기자재 기업이 참여한다. 1978년 웨스팅하우스 기술로 고리를 세운 지 반세기, 이제는 그들과 파트너가 되어 미국에 원전을 짓는 셈이다.
물론 의문도 남는다. 1,200억 달러는 어디서 나오며, 건설 일정은 누가 보증하는가. 원전 사업의 특성상 원자로 용기 같은 장주기 기자재는 발주부터 제작까지 수년이 걸린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 검토와 국회 보고를 전제로, 연말까지 최대 100억 달러를 먼저 지급해 장주기 품목을 선제 확보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속도전과 내실 점검이 양립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가 있다. 조정대상지역 일시적 2주택 특례 기간이 3년에서 2년으로 단축됐고, 매입임대 아파트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배제에도 기한이 설정됐다. 서울 아파트값이 86주 연속 상승하며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한 시점이라, 과열에 제동을 거는 신호로 읽힌다. 시장 안팎에서는 세 부담이 비교적 적은 '덜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외로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투자를, 대내로는 주택 시장 안정을—정부가 양쪽에 동시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리에서 출발해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먼 길을 왔다. 그러나 이 칼럼니스트는 장기 프로젝트의 손익을 계산할 재간도, 원자로 용기의 납품 일정을 점검할 역량도 없다. 다만 숫자가 커질수록 점검할 것도 커진다는 상식을 되새길 뿐이다.